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멕시코 혁명 (문단 편집) === 마데로 정권의 최후 === 초기에 마데로게 우호적이었던 미국마저 마데로 정권의 정치·경제적 불안정과 치안 유지 능력에 불만을 나타내면서 멕시코 내의 자국 자본을 보호할 강력한 정권을 물색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는 멕시코 주재 미국 대사인 헨리 윌슨(Henry Lane Wilson)이 있었다. 헨리 윌슨은 마데로를 사사건건 방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에르타를 비롯한 반혁명 세력과 결탁하여 마데로 정권의 전복을 획책하는 등 멕시코 내정에 대한 주제넘는 개입으로 악명을 떨쳤다. 더욱이 마데로 정권은 반란 진압에 소요되는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방대한 규모의 국채를 발행함으로써 정부의 재정 압박을 가중시켰다. 마데로 정권은 안팎으로 적들에게 포위되어 있었으나 마데로는 여전히 낙관적 이상주의에 사로잡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군부를 중심으로 한 반혁명 세력은 마데로 정권을 전복시킬 음모를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이미 1913년 초부터 연방군 장성들의 쿠데타설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었으며, 마데로의 측근들조차 쿠데타의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지만 마데로는 쿠데타 가능성을 일축하였다. 마침내 2월 9일 [[몬드라곤 소총]]을 개발했던 [[https://en.wikipedia.org/wiki/Manuel_Mondrag%C3%B3n|마누엘 몬드라곤]](Manuel Mondragón) 장군의 주도하에 쿠데타가 일어나 19일까지 이어졌다. 우에르타 장군은 마데로 대통령의 명령을 받고 반란 진압에 나섰지만 실제론 진압하는 시늉만 하면서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부대에겐 반란군을 향하여 무모한 돌격명령을 내려 큰 희생을 초래하게 한 후 그 힘을 소진하게 했다. 우에르타는 미국 대사관의 중개로 반란군과 내통하고 있었다. 2월 18일에 우에르타 장군은 스스로 쿠데타를 일으켜 마데로 대통령과 [[https://en.wikipedia.org/wiki/Jos%C3%A9_Mar%C3%ADa_Pino_Su%C3%A1rez|호세 마리아 피노 수아레스]](José María Pino Suárez) 부통령을 체포 후 투옥했고, 목숨은 살려줄 테니 대통령직을 내놓으라고 강요했다. 마데로는 이를 수락했지만 대통령이 된 우에르타는 약속을 어기고 2월 22일에 마데로 형제와 수아레스를 살해했다. 이 시기를 '''비극의 열흘'''(La Decena Trágica)이라고 부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